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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낙환 이사장

인터뷰 백낙환 이사장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2.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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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공과대학에 진학하려고 했습니다. 큰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를 진학하게 됐습니다."
백병원하면 으레 백인제 박사와 백낙환(76) 인제학원 이사장이 자연스레 연결되게 마련. 백 이사장은 일찍 어머니를 여위고 부친인 백붕제 변호사가 군수발령을 받아 지방으로 이사를 다닌 까닭에 백부 백인제 박사 슬하에서 중학교와 대학시절을 보내야 했다.

경성의전 외과 주임교수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외과의사로 명성을 날리던 백인제 박사는 조카가 뒤를 이어 의학을 전공하기를 희망했다. 일단 의사가 되기로 방향을 잡은 백 이사장은 60여년을 한 눈 팔지않고 의사와 경영자 그리고 교육자로 살고 있다.

"큰아버지께서 백병원을 공익법인화 해서 사회에 환원하시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평생을 그 길을 따라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제하의 암울한 시기에 백인제 박사가 인술과 의학연구 그리고 교육을 통해 겨레를 구하고 인술제세(仁術濟世)의 백병원 정신을 만들었다면 백 이사장은 그 정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올리는데 앞장섰다. 6. 25전쟁의 와중에 백인제 박사의 납북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어야 했던 백병원을 회생시키기 위해 백 이사장은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서울백병원 완공식 때는 공사 대금을 완불하지 않았다고 건축업자가 열쇠를 모두 가져가 버리는 일도 있었죠. 벌어서 갚겠다고 빌고 빌어서 열쇠를 받았던 기억도 납니다."

백 이사장은 백병원을 모태로 부산백병원,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동래백병원 등 5개 산하병원과 학교법인 인제학원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음으로써 백인제 박사의 백병원 설립 정신을 조금이나마 받들 수 있게 됐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최근의 의료계 사태를 바라보는 백 이사장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의료보험제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의료보험이 국민들이 의료혜택을 받는데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의료와 의학의 수준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습니다."

백 이사장은 "낮은 의료보험수가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병원경영 환경이 중환자를 기피하게 만들고, 응급의학과 재활의학 분야를 후퇴시키고 있다"며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개선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1960년대 백병원 회생을 위해 1인 4역을 맡아 사투를 벌여야 했던 치열한 생활은 지금도 습관처럼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는 '소식다동'(小食多動)의 생활습관과 등산으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백 이사장.

공식 인터뷰를 마친 후 일식집에서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백 이사장은 장어백반을 시켰다. 장어백반과 시원한 대구탕을 앞에 놓고 이어진 인터뷰는 6. 25전쟁 당시 포로로 붙잡혔다가 구사일생 탈출에 성공했던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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